방덕(龐德, ? ~ 219년) 또는 방영명은 후한 말기의 마등, 조조의 무장. 자는 영명(令明). 방회의 아버지, 방유(龐柔)의 사촌동생으로 방덕(龐悳)으로도 표기된다. 서량(西凉) 남안군 향도현 출신이였다. 남안군(南安郡) 훤도현 사람이다. 젊었을 때 군리(郡吏)와 주(州)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방덕은 동한의 은사아묘 양양 사람으로 방통의 종부이다. 학문의 엄밀성을 늘 중시했다. 형주지역의 명사인 방덕공 밑에서 이들과 동문수학하던 20대 청년은 하지만 '서책'의 핵심만 취하고 세부사항은 버렸다. 일찍이 부터 방씨는 채씨, 황씨, 괴씨와 함께 양양 일대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제갈량을 '와룡'이라 하고, 방통을 '봉추' 사마휘를 '수경'이라 하였다. 모습원래 방덕은 촉의 오호장군 중 한 사람인 마초의 수하다. 마등은 마초와 방덕 등 무력이 뛰어난 장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할 때 방덕이그 자리에 있었다면 마대처럼 마초를 따라갔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없었다. 적군들에게 "백마장군"이라 불렸다.
방덕(龐德, ? ~ 219년) 또는 방영명은 후한 말기의 마등, 조조의 무장. 자는 영명(令明). 방회의 아버지, 방유(龐柔)의 사촌동생으로 방덕(龐悳)으로도 표기된다. 서량(西凉) 남안군 향도현 출신이였다. 남안군(南安郡) 훤도현 사람이다. 젊었을 때 군리(郡吏)와 주(州)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방덕은 동한의 은사아묘 양양 사람으로 방통의 종부이다. 학문의 엄밀성을 늘 중시했다. 형주지역의 명사인 방덕공 밑에서 이들과 동문수학하던 20대 청년은 하지만 '서책'의 핵심만 취하고 세부사항은 버렸다. 일찍이 부터 방씨는 채씨, 황씨, 괴씨와 함께 양양 일대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제갈량을 '와룡'이라 하고, 방통을 '봉추' 사마휘를 '수경'이라 하였다. 모습원래 방덕은 촉의 오호장군 중 한 사람인 마초의 수하다. 마등은 마초와 방덕 등 무력이 뛰어난 장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할 때 방덕이그 자리에 있었다면 마대처럼 마초를 따라갔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없었다. 적군들에게 "백마장군"이라 불렸다. 유비가 한중왕의 자리에 오를 때 동오에서는 노숙이 죽고 여몽이 나타나 조조와 협공하여 형주를 친다. 조조는, 관우의 명성이 천하를 뒤흔들고 있어 적수가 없었는데, 방덕이 관우의 적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즉각 방덕을 선봉에서게 했다. 관우도 방덕에게 헤드샷 당했었다. 관우는 방덕을 목베고 화타에게 치료받을 때도 태연히 바둑을 두는 등의 기개를 보였지만 여몽의 계략으로 손권에게 죽었다. 분류:삼국지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