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벌도리(蘇伐道理) 또는 소벌공(蘇伐) 혹은 소도리(蘇都利)는 신라 초기의 씨족장으로 서라벌 6촌 중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의 촌장이었다. 《삼국유사》에 보면 6부(部) 촌장들은 모두 천강인(天降人)처럼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형산(兄山)에 내려왔으니 이가 사량부(沙梁部) 정씨(鄭氏, 三國史記에는 崔氏라 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남산부(南山部)라 하여 구량벌(仇梁伐), 마등오(麻等烏), 도북(道北), 회덕(廻德) 등 남촌(南村)이 여기에 속한다. 기록에 의하면 돌산 고허촌은 촌장이 소벌(蘇伐) 혹은 소벌도리(蘇伐都利)였다. 6촌장 중에서도 이 소벌도리는 혁거세 옹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씨(蘇氏)의 조상 소벌도리(蘇伐都利) 소씨(蘇氏)는 그 원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의 역사와 비등한 수천 년의 세월을 만날 수 있으며, 이 땅에서 가장 시원(始原)이 깊고 유구한 성씨로 진주(晋州)를 본관으로 한다. 형산에 자리잡은 곤오가 바로 초기 신라 사로의 건국 세력자로서 형산에 자리잡은 소벌도리다. 소벌도리의 조상은 바로 적제 축융인데, 적제축융의 후예가 헌원이다.
소벌도리(蘇伐道理) 또는 소벌공(蘇伐) 혹은 소도리(蘇都利)는 신라 초기의 씨족장으로 서라벌 6촌 중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의 촌장이었다. 《삼국유사》에 보면 6부(部) 촌장들은 모두 천강인(天降人)처럼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형산(兄山)에 내려왔으니 이가 사량부(沙梁部) 정씨(鄭氏, 三國史記에는 崔氏라 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남산부(南山部)라 하여 구량벌(仇梁伐), 마등오(麻等烏), 도북(道北), 회덕(廻德) 등 남촌(南村)이 여기에 속한다. 기록에 의하면 돌산 고허촌은 촌장이 소벌(蘇伐) 혹은 소벌도리(蘇伐都利)였다. 6촌장 중에서도 이 소벌도리는 혁거세 옹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씨(蘇氏)의 조상 소벌도리(蘇伐都利) 소씨(蘇氏)는 그 원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의 역사와 비등한 수천 년의 세월을 만날 수 있으며, 이 땅에서 가장 시원(始原)이 깊고 유구한 성씨로 진주(晋州)를 본관으로 한다. 형산에 자리잡은 곤오가 바로 초기 신라 사로의 건국 세력자로서 형산에 자리잡은 소벌도리다. 소벌도리의 조상은 바로 적제 축융인데, 적제축융의 후예가 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