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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피리오스(Porphyrius)는 플로티누스의 제자다. 신플라톤학파는 재래의 철학사상에다 종교적 요소를 가미하여 신비 철학을 구성한 것이다. 시조는 암모니우스 삭카스(Ammonius Saccas, 243년에 죽음)였는데 부모로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았으나 후에 옛 종교로 돌아간 자이다. 이 학파의 중요 학자는 플로티누스와 포르피리우스이다. 마케도니아(Macedonia)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또는 포르피리오)는 25세경에 고향을 떠나 이집트로 갔다. 이집트 사막과 요르단 계곡에서 수도자로 살던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또는 포르피리오)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신기료장수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주력하였다. 40세에 이른 그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사제가 되었는데, 396년에는 가자의 주교로 추천되었다. 그는 성상을 파괴하는 황제의 정책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였다가 큰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한 조각을 지킨 분이라고 전해온다. 플로티누스의 제자 포르피리우스(Porphyrius)는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 타락, 성육신 구속, 심판 등의 진리를 송두리째 배격했고 박해 기간에 기독교에 대한 비판서를 썼다. 그는 다신교의 옹호자로서 무려 15권의 저서를 저어서 기독교를 공격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해와 달을 창조하시기 전에 빛을 창조하실 수 있었는지, 그리스도가 어떻게 제자들에게 더 이상 자기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서는 동시에 그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또 신약과 구약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 사도들이 서로 분쟁했다는 것, 제자들의 사상이 일치되지 못했다는 것 등을 들어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의 가르침이 불완전하다고 했으며, 더 나아가 예수님이 거짓말을 했으며 제자들의 본이 되지 못했다고 비방했다. 또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 사후에 주님의 교훈을 곡해하여 사족을 달았다고 했다. 이와 같이 철학으로서 종교를 대신하려고 한 신플라톤 학파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어거스틴은 그 원인을 다음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 敎祖가 없었다. 신앙이나 추종의 대상이 될 분명한 인격적 신이나 교주가 없었으므로 철학적 사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둘째,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방법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셋째, 축복과 평안을 어떻게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분류:피리 분류:영지주의 분류:포르피린 분류:플라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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